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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하고 반역하는 자(겔 3:22-27)-2019.6.2

201962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패역하고 반역하는 자

본문 : 에스겔 322-27

말씀 : 한양훈 목사

 

 

서론.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어떤 장소에 있었는데 그의 속사람을 들어 올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신 후 이제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에스겔의 들어 올려서 여러 신적 체험을 했는데 그것이 종결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속사람이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이후 다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셔서 이동하라고 하십니다.

 

22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거기서는 16-21절에 배경이 된 델아빕(15)의 어느 한 부분일 것입니다. 장소를 실제 이동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권능이 다시 임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말하리라에스겔에게 실제 강변에 정한 한 들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들은 사람들이 없는 공간이며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장소이동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322절의 내용은 다시 13절의 위치로 다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3절에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는데 여러 영적 체험을 하고 다시 원위치를 시키신 것인데 거기서 다시 이동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변함이 없이 계속 임하십니다. 당시 강가에는 여기저기 망한 유대인들이 모여 있었고 불평과 원망이 많았습니다.

강 주변에는 언덕이 있고 둑이 있습니다. 보통 거주지와 강 사이의 공간이 넓게 펼쳐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들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사람이 없는 공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와 살면서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았기에 강에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 많은 곳이 아닌 풀들이 우거지거나 황량한 들판에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광야나 들 같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저도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시고 그런 마음도 들지 않게 하시니 제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저는 보통, 사람이 없을 때 기도를 합니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이면 신세한탄이나 원망,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에스겔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선지자로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가르치고 돕고 싶겠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람이 없는 곳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자유가 없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직접 명령을 받으며 함께 동행 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하나님의 종이 된 느낌이 들므로 좋습니다. 에스겔이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23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실제 에스겔이 강가에서 좀 더 인적이 뜸한 들로 나갑니다. 순종의 사람입니다. 불순종의 사람은 자신이 바다나 강으로 가서는 하나님을 자기가 있는 쪽으로 오시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의 음성을 못 듣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들판으로 나갔을 때 그 장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만일 에스겔이 자기가 원하는 어떤 장소에 갔다면 하나님의 권능이 거기에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들에 계시기에 에스겔에게 들로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지만 특별히 임재하시는 곳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전에 그발 강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하나님께서 처음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에게 영광으로 임재 하셨는데 지금 똑같이 임재하신 것입니다. 장소가 옆의 들로 조금 옮겨진 것뿐입니다. 그리고 1장에 나타난 영광과 성격상 같은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임재는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영광이 또 다시 반복됩니다.

아마도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잘하므로 더 강하게 임재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보시면서 분노하십니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성을 하나님도 느끼십니다. 하나님도 시기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시기하십니다. 시기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를 사랑해주시를 바라며 시기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한 번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엎드리니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시는 것을 보고 에스겔이 엎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졌어도 계속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친해졌다고 예의를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24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에스겔이 엎드리니 주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주의 영이 에스겔을 일으키십니다. 아마도 성령이 아닐까합니다. 1장에서의 상황과 똑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하나님은 예상 외로 집으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라고 하십니다. 에스겔은 원래 기도하기 위해 강가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도를 그만 하고 집에 돌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일정 기간 동안 사역을 중단하라는 것이고(랑게), 장차 네가 갇혀있듯 이스라엘이 포위당한다는 뜻일 것입니다(카일).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분명히 부름을 받았지만 그때, 그때 할 일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듣는다면 바로 순종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도 귀를 닫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25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에스겔에게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말라는 것은 사람들이 너를 가두고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에스겔을 반대하는 무리를 가리킵니다(2:6).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그들이 에스겔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즉 핍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파수꾼이나 지금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나가서 일하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의 상태는 선지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지금으로서는 활동을 막으십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이 일하는 시기도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가서 일하라고 하시면 일하고 쉬라고 하시면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 잘 아시니 말씀하시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도 자기 열정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26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하나님이 에스겔을 당분간 벙어리가 되게 하십니다. 이는 에스겔이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다면 분명히 유대인들을 꾸짖어 바른 길을 가게 할 것이므로 오히려 하나님께서 에스겔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역설적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은 결국 회개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바로 유대인들이 현재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효자요, 역적 같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패역한 족속이기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깊은 영적인 비밀을 아는 사람인데도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분명 16-21절에서 파수꾼으로 세우신다고 하셨으나 22-26절에 보면 공개적으로 사역을 중단시키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시 바벨론에 2차 포로(BC 597)가 있은 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유대인들은 선민인 자신들이 고통당하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으므로 회개를 외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종인 것이 확실하지만 패역한 백성에게 나아가 하나님을 전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전도에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번 만나서 여러 시간 이야기를 해도 안 듣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한 번만 만나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을 못 받을 사람은 패역한 사람이고 귀와 가슴과 머리에 악한 영이 많아서 복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에스겔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은데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 듣는 사람은 안 듣습니다. 그가 형통한 생활을 한다면 그래서 안 듣는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은 망했는데도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망한 사람들이 더 말을 안 듣습니다. 그동안 귀한 말을 안 들으므로 망한 것입니다. 망하고 나서 귀를 여는 사람은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27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신기하게도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하나님께서 언어의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말을 할 때가 아니므로 말을 못하게 하셨지만 때가 되면 전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체험이 많다고 해서 전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 갈 백성은 아무리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에스겔은 자신의 뜻이나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것입니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일부는 듣고 일부는 듣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목회하면서 깨닫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수가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그발 강가에 잡혀온 유대인들을 향해 하나님은 패역한 족속”,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혹평을 하십니다.

복음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실 때 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부분에 대해서 제 은사이신 박윤선 박사의 논조는 이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다가(혹은 듣다가) 그 말씀을 깨달을 때에 그것이 너무 달아서 하늘에서 현재 내게 주신 말씀으로 확실하게 믿어지는 사실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 외에 새롭게 하시는 말씀이 개인에게나 교회에 주시는 경우가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만일 그렇다면 상당히 폭이 좁은 견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마음에서 혹은 생각에 말씀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