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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영이 들어 올려지다(겔 3:12-15)-2019.5.19

2019519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에스겔의 영이 들어 올려지다

본문 : 에스겔 312-15

말씀 : 한양훈 목사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보석과도 같은 모습으로 보이고 여러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권세 있고 능력 있는 모습으로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마가 굳은 금강석 같고 마음이 굳어있는 사람으로 묘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들인데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묘사되어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불행한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훌륭한데 자녀도 훌륭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하나님은 신중의 신이고 최고의 신이신데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빈민굴의 사람이나 조폭들처럼 생각이나 삶이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무 기가 막힌 일입니다.

 

12절에 보면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라고 나옵니다. 에스겔 1장부터 보면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 주의 영이 오셔서 에스겔을 들어 올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영은 루하흐로 성령을 가리킵니다(1:12, 2:2). 이 단어는 바람, 호흡으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바람, 호흡, 성령, 주의 영, 이것을 번역할 때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나 어원이 같습니다. 여기서 들림을 받았다는 말은 83, 111절과 24절처럼 환상 중에 그의 영이 들림을 받았다고 보기도 합니다(랑게). 주의 성령이 에스겔을 들어 올렸는데 이는 15절을 보면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라고 하였으므로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데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 올려서 그발 강가 옆에 있는 델아빕으로 에스겔을 옮겨갔다는 것입니다.

에스겔을 들어 올리는 주의 영의 역사하신 상태에 대해 논란이 많고 학자들마다 생각이 다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단순히 실제 에스겔의 몸을 들어서 옮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시면 강한 바람으로 에스겔을 들어 장소를 이동시키는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근데 대부분의 주석들은 에스겔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해 체험을 하고 그의 몸은 그 자리에 있었지만 환상으로 자신이 옮겨진 것을 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에스겔은 한 자리에서 환상으로 델아빕의 사람들을 본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쉽게 환상을 보았다고 하지 않고 들어 올렸다고 한 것을 보면 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에스겔의 속사람이 몸에서 빠져나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내용은 전부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모습, 네 생물의 모습을 영적이며 실제적인 것을 보고 말하고 있으므로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때 성령이 들어 올리신 것은 몸이 아니라 속사람을 들어 올렸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속사람의 대한 개념정리가 안 되서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속사람은 영체입니다. 영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들어 올리실 때 쑥 나가면서 늘어집니다. 속사람이 빠져나갈 때 다 나가는 것은 아니라 머리 부분과 몸 부분이 빠져나와서 공중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부분은 그냥 몸에 있는 것입니다. 입신을 체험하시는 분들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몸에 속사람의 일부분은 남아있습니다. 몸에 영체의 일부분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만일 속사람인 영체가 완전히 빠져나갔다면 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육신에 있을 때도 환상을 깊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사람이 몸에서 빠져 나가면 육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자연스럽게 영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속사람을 몸에서 어느 정도 빼내서 온 영적 세계를 잘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속사람이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영이 몸에서 쭉 빠져나왔을 때 마침 몸 뒤에서 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속사람의 몸이 들려지지 않아도 영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속사람이 몸에서 들려지면 더 자세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의 내용은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라는 음성이었는데 이는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성격의 소리입니다. 소리의 내용은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처소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계시는 처소는 보좌입니다. 그런데 왜 보좌에서 처소로 바뀌었을까요. 하나님은 보좌에 계신다고 누구나 생각하는데 그 보좌가 상당히 크고 그 위에 주님이 계시는데 아직 부활의 주님이 그 보좌를 차지하신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는 주님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주인공이십니다. 그런데 보좌가 아닌 처소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계심, 하나님의 모습은 보좌로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좌 뒤로 어마어마한 처소가 또 있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 보좌이지 그 감추어진 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온 내용과 연결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천사들이 세상을 심판할 때 보좌에서 천사가 화로를 들고 나오는데 보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므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천사들이 보좌 아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좌 아래 통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좌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보이시는데 보좌는 포면적인 것이고 그 뒤로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처소가 있고 그곳에 엄청난 천사와 하나님의 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의 군대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곳에서 무기 든 군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서 감추어져 있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처소로부터 나온다고 한 것입니다.

 

13이는 네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네 생물들의 날개소리를 언급한 것은 그 소리가 나는 곳이 보좌가 아닌 보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들의 날개가 부딪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처소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날개소리에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생물 곁의 바퀴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이 음성은 날개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생물 곁의 바퀴소리입니다. 바퀴는 돌아갈 때 소리가 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임재 그리고 네 생물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습니다. 에스겔은 장엄한 영적 세계가 운행하는 것을 에스겔이 다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보좌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14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이는 환상 가운데 성령이 인도하실 수도 있지만 12절의 해석처럼 성령이 에스겔의 속사람을 들어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속사람이 이동합니다. 실제로 이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자매는 자신이 잠을 자는데 속사람이 몸에서 빠져 나와서 공중에서 돌아다니는데 결국 밤새 한 숨도 못 잤는데도 몸이 전혀 피곤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는 그 자매의 속사람이 깨어 있었던 것이지 몸은 잠을 잤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밤새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로 있는데도 피곤한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영적인 현상이므로 가능합니다. 저는 여러 해를 몸은 자지만 속사람은 깨어있는 경험을 많이 했는데 속사람이 몸에서 나와서 자고 있는 내 몸을 보았는데 어느 때는 코를 고는 모습도 보이고 뒤척이는 모습도 보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 성경의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속사람을 성령이 들어 올려 가시면 몸에서 쑥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이 속사람이 완전히 나가는 경우와 조금 나가는 경우가 있어 상황에 따라 다 다릅니다. 어떤 때는 확 나가고, 어떤 때는 상반신만 나가고, 어떤 때는 고개만 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못하면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영적인 체험을 하고 영안이 열려서 주석을 쓰고 성경을 해석해서 책을 쓰면 좋은데 학자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많아서 주석이나 강해서를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근심하고 분노한 마음으로 가니왜 여기서 에스겔이 근심하고 분노하였겠습니까.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와서 그발 강가에서 살았는데 그발 강 근처에 도시가 많이 있었고 그 도시들에 골고루 살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속사람으로 델아빕을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살 때에는 하나님께 분배 받은 땅에서 넉넉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포로로 잡혀와 궁핍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넉넉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난하고 어렵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포로로 잡혀왔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를 드리고 해야 하는데 우상숭배하는 나라에서 삶으로 그렇게 하기 어려운데다가 여러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라가 망했는데도 도무지 돌이키지 않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분노의 감정이 든 것입니다. 에스겔은 속사람이 나와서 이 모든 광경을 보면서 마음에 근심하고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망했나, 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방 땅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한탄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았으므로 그런 하나님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이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망한 것을 보면서 애가 타고 분이 나고 속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다고 해도 에스겔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에스겔이 자신을 생각하나, 자기 백성을 생각하나 한심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에스겔에게 역사하십니다.

 

15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에스겔의 속사람이 델아빕에 갑니다. 이곳은 그발 강가 근처이며 곡식더미, 이삭들의 언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속사람이 나와서 세상을 보면 망원경으로 보듯이 가깝고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미경으로 보듯이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나와서 보면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생생하게 다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에스겔이 이런 것을 다 체험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로 갑니다.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일을 지내니라그가 두려워 떨며 칠일을 지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영적체험을 하는 것은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상당히 두렵고 떨리고 소름도 끼치는 그런 체험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그 사람들에게 가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음성도 있고 하나님께서 두루마리를 먹여주셔서 그 배에 두루마리 말씀이 있고 이렇게 하나님을 깊이 체험을 하여서 두려움을 느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보니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님의 징계로 포로로 잡혀왔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더 많이 벌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이 보통 징계를 받으면 정신을 차리는데 아무리 많이 벌을 받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지혜로운 것 같으나 미련합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두려우신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또 한편 자기 백성들이 초라해진 모습에도 돌이키지 않는 모습을 보고 깊은 슬픔에 빠져서 더 두려웠던 것입니다.

에스겔이 겪은 이 두려움은 마비되고, 황폐하게 되고, 정신을 잃거나 놀란다는 의미의 솨멤이란 단어입니다. 에스겔은 완전히 혼미해진 상태입니다. 에스겔의 체험을 하는 사람이 사실 역사적으로 많지 않는데 이런 체험을 하면 잠도 못잡니다. 아마 에스겔은 밥도 못 먹었을 것입니다. 특히 에스겔은 성령께서 강하게 속사람을 들어 올렸으므로 마음대로 다시 돌아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실 것이 있어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이므로 마음대로 몸으로 돌아와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칠 일의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아마 가만히 있어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깊이 기도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골방 같은 곳에서 혼자 있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나와서 돌아다니며 영적인 세계를 보다가 누가 건드려서 멈춰진다면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순결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를 보며 깊은 영적 세계를 체험합니다. 회개되지 않은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이런 영적체험은 불가능합니다. 에스겔은 실제 칠 일간 지냅니다(Keil). 이 기간 동안 에스겔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장차 어떻게 해야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포로의 상태에서 벗어날지를 기도하며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도 허락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이나 계시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칠 일 간 돌아다니며 속사람이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스라엘 민족의 삶을 보게 하셨을 것입니다. 집집마다 보느라 칠 일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주일 간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하루 종일 말씀하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침저녁으로만 말씀하실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한 달 내내 들려오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몇 달을 말씀을 안 하실 때도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싶으실 때 말씀하시고 말씀을 안 하고 싶으실 때는 안하십니다. 말씀을 안 하실 때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징계하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삶은 징계를 받을 만큼 형편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구든지 어려운 일을 당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징계를 받습니다. 그런 경험은 누구나 다 있지만 한 번 맞은 매는 다시 안 맞는 게 똑똑한 사람입니다. 망해본 일을 다시 하면 안 되지만 혹시 다시 한다면 세 번은 안 해야 하는데 세 번도 하고 네 번도 하고 계속합니다. 우리나라에 음주운전이 문제인데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면 다시는 음주운전을 안 할 것 같지만 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여 결국은 면허도 정지되었는데 무면허로 사고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뉴스를 보면서 비판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지만 영적으로는 마귀가 따라주는 술을 먹고 사고를 내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또 그런 사고를 내고 반복하며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두려워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정말 잘해야 합니다.

에스겔의 체험은 지금도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찾아보면 실제로 이런 체험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영적인 세계가 많이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시고 많은 것을 보게 하십니다. 칠 일이면 온 세상을 다 볼 수 있습니다. 한두 시간으로도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한 내용인데 그 사람이 속사람이 나와서 어떤 사람을 보니 어떤 옷을 입고 요리를 하는데 튀김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다음날 자신이 정확하게 보았는지 궁금하여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어제 어떤 옷을 입고 튀김요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하니 맞다고 하더랍니다. 이런 신기한 영적 체험을 한다면 인생이 즐거울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세계를 확실히 알고 겸손하게 주님을 잘 섬겨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