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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다(겔 2:1-7)-2019.4.21

2019421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시다

본문 : 에스겔 21-7

말씀 : 한양훈 목사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선지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에스겔 선지자는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글을 쓰면 그 글은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보고 그리는 것과 보지 않고 그리는 것이 확연히 다른 것과 같습니다. 특히 127-28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빛 같기도 하고 불같기도 하며 그 가운데 무지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이런 신비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저절로 엎드려서 귀로 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제 실제적으로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를 일으켜 세워주시니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까지 완벽하게 체험합니다.

 

1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여기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보좌에 앉아계신 분이십니다(렌스키). 그는 128절에 나오는 분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무지개라는 형상이 있는 것을 보면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에스겔이 엎드려서 두려워하고 긴장하고 있을 때 성부 하나님은 네 발로 일어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일으켜주실 수 있지만 에스겔이 스스로 일어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하리라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나에게 임하사라고 말씀합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즉 성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실 때, “그 영이 나에게 임하사즉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나를 일으켜그 영이 임하셔서 하신 일은 에스겔을 일으켜 에스겔이 스스로 일어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영은 사람의 형상을 가진 성자이신 구약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위로자이십니다(매튜 헨리). 에스겔은 지금까지 힘이 없어서 엎드려 있었는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일으켜주시니 힘이 생겨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발로 세우시기로만약 발이 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일으켜 세워도 놓으면 다시 쓰러지겠지만 그리스도가 세워주실 때 그리스도의 영적 에너지가 몸에 들어와서 힘이 생기므로 발로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도 이런 경험을 합니다(10:18). 요한도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십니다(1:17).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지금 에스겔에게 나타나서 일으켜주신 분은 그리스도인데 에스겔에게 말을 하는 분은 성부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서로 동역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해석할 때 항상 하나님 중에 어떤 분이 행하셨느냐에 확신이 없습니다. 신약 같으면 단순하지요. 주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으니까 주님이 하나님과 대화할 때 성부가 성자하고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거나 역사하실 때 삼위 중에서 어떤 하나님이 하셨는지 알면 좋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 소리를 에스겔 선지자가 듣습니다. 에스겔은 지금 남이 쉽게 경험해보지 못한 신적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은 우레나 군대, 폭포의 소리와 같은 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 큰 소리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에스겔은 그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소리는 내 영혼의 귀에 들려오는 소리이므로 아무리 귀를 막아도 들리고 청각장애인이라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로 잘 들을 수 있어도 영적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영적인 청각장애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이라도 영적으로 깊어지면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잘 볼 수 있어도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시각장애인인 것입니다.

 

3절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하나님은 에스겔을 인자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패역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패역한 자는 패역한 이방인들이라는 뜻입니다(Keil). 그들이 너무 패역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배반하는 악한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패역반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역죄는 정말 큰 죄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인데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 패륜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백성들에게 말을 전하러 갔는데 칭찬을 전한다면 마음이 편할 텐데 책망의 말, 심판의 말을 전해야 하므로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패역한 백성 안에 인자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자라는 말은 사람의 아들이란 뜻인데 예수님께도 사용되고 욥이나 시편기자, 다니엘 등에게도 사용되어졌고 에스겔서 안에서는 93회 모두 에스겔에게만 사용되어집니다. 이는 에스겔이 진정한 선지자라는 영광스러운 의미가 됩니다. 또한 연약한 인간임을 알아야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을 보고 천사와 함께 있지만 언젠가는 죽는 인간입니다.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 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에스겔 시대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문제가 아니라 조상 때부터 이어온 것입니다. 수많은 세월을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서 살았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죄를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10세대, 20세대 넘어가도 깨닫지 못하고 조상 때부터 범죄하고 죄를 회개지 않아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데반도 순교하기 전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똑같이 말씀합니다(7).

 

4절에서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얼굴이 뻔뻔한 것은 얼굴에 악한 영이 많이 씌워져서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죄를 지으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세력이 많으면 얼굴이 굳어져서 뻔뻔하게 되고 죄로 인한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음도 굳어져서 콘크리트를 발라놓은 듯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는데 마음이 굳어지면 마음에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씀을 전해도 다 튕겨 나올 뿐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해 무감각하고 우상을 숭배하고도 전혀 마음에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입니다. 완고하고 악한 마음입니다(48:4). 그렇게 되면 회개와 눈물이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천국에서 사명을 가지고 보낸 특별한 백성이 아닙니다. 에스겔 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보내진 택한 백성입니다.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니하나님이 이런 패역하고 악한 자들에게 선지자 에스겔을 보내십니다. 사실 이런 자들에게 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 하나님께 책망을 듣는 자들에게 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하나님은 에스겔이 그들을 만나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내용은 책망입니다.

 

5절에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패역이란 반역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오히려 반항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는 거룩한 백성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실제는 정반대의 형편입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전하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이 에스겔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고 듣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선지자가 가서 말을 전할 때 반대에 부딪칠 수 있습니다. 특히 에스겔은 선지자들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안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백성들이 너의 말을 안 들을 가능성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전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커다란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이 있지만 좋은 의미에서는 예정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듣든지 아니 듣든지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데 그들이 자신의 의지로 회개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면 말씀을 듣는 것이고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내가 다 예정해 놨는데 이 사람들은 결코 말을 안 들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지도 않고 네가 가면 다 말을 들을 테니 담대하게 말해.”라고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강제적으로 말을 듣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강제로 은혜를 주시고 강제로 믿게 하고 강제로 충성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아담 때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 선택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주시고 성경을 주셔서 사람이 선택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상당히 주셨는데 칼빈주의에서는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좀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알미니즘이 아닌가 하고 반사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칼빈주의는 칼빈이 말한 칼빈주의가 아닌 변형된 칼빈주의, 왜곡된 칼빈주의가 많아 보입니다.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자기의 생각, 이성적인 판단, 자기의 감정, 자기의 정치력 등 자기 마음대로 하였는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지자가 있을 때에는 행동을 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이 세상은 자신들의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사는 것을 가르치시고 경고하시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한 후에라도 과거 선지자들이 자신에게 가르친 것을 기억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6절에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시, 찔레, 전갈은 광야를 생각나게 합니다.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광야의 생활은 정말 어렵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는 가시 많은 식물로 인해 많은 농작물과 가축이 해를 입듯이, 선지자가 고통을 당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죽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정말 영광된 일이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선지자를 찌르고 공격할 것을 각오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선지자들이 전한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선지자는 상대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두려워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에서 악하게 살던 사람에게 가는데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28절에서도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7절에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하나님은 다시 그들이 패역한 자들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들은 역적 중에서도 역적입니다. 에스겔 당시의 유대인들이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죽일 때의 유대인들도 같았습니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하시고 말씀을 주셔서 이렇게 악하고 죄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심으로 그들이 살기를 바라시고 에스겔을 보내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을 그들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다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경우라도 변질시키거나 왜곡시켜서는 안 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진리를 왜곡하면 심판을 당합니다(22:18-19).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 년, 이천 년이 지나도 똑같이 선지자를 핍박한 것처럼 나도 그렇지 않은지 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