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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창 위에 있는 보좌(겔 1:26-28)-2019.4.14

2019414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궁창 위에 있는 보좌

본문 : 에스겔 126-28

말씀 : 한양훈 목사

 

 

26절에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라고 했습니다. 네 생물이 자리 잡은 그 위에 궁창이 있고 그 궁창 위 더 높은 곳에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맑은 창공과 창공 위의 보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보좌는 영광의 보좌요, 은혜의 보좌요, 승리의 보좌요, 통치의 보좌요, 심판의 보좌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보여줍니다(메튜 헨리).

이 보좌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영광의 보좌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나라에서 생수가 흘러 내려오는데 그 은혜의 물이 예배 처소에서부터 흘러서 천국의 모든 땅을 다 적시고 이 땅에도 흘러내려옵니다. 각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 물이 내려오는 것은 개인마다 교회마다 통로와 양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 물의 근원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래서 보좌를 단순히 큰 보좌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넓은 천국을 덮고 이 땅에까지 흐를 정도의 많은 물이 나올 정도로 큰 의자입니다. 또 그 보좌 위에는 무지개가 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죄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으므로 보좌는 승리의 보좌입니다. 성도들도 이기는 자만이 하나님 앞에 가고,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므로 승리한 자를 위한 보좌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것입니다.

보좌는 통치의 보좌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과 천국을 통치하십니다. 하늘나라를 올라가면 성도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베풀어주실 보좌에 앉을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갈수록 천국에서 더욱 높은 신분의 사람입니다. 보좌에 함께 앉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작은 마을이라도 다스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열 고을 다스릴 사람, 다섯 고을 다스릴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좌 가장 앞에 있을 24장로들은 천국에서 큰 땅을 다스릴 것이고 점점 뒤로 갈수록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들일 것이며 보좌 가장 끝에 있는 사람은 천국의 자장 작은 모퉁이 마을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보좌에 앉은 사람은 다 다스리는 권세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보좌는 통치의 보좌이면서 권세의 보좌입니다.

또한 이 보좌는 심판의 보좌입니다. 하나님은 이 보좌에 앉아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고 판결을 내리십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늘 보좌에는 맑은 창공이 있는데 죄도 없고 불순물도 없고 그냥 맑고 깨끗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맑은 창공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불순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아무것도 막는 것이 없어야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가 끼어있으면 맑은 창공을 소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맑은 창공 위에 보좌가 있는데 이 보좌는 우주의 중심이며 이 보좌에 항상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서 주님이 세상을 통치하시며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이 보좌를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를 이 땅에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네 생물들은 하늘에 속한 존재들입니다. 네 생물에는 눈이 가득하므로 네 생물을 통하여 지켜보기도 하시고 또 직접 지켜보시기도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계시므로 앉아계시는 보좌에서 강력한 권위가 나옵니다. 보좌의 권위는 인간적이거나 천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인간적인 권위는 없으며 보좌에서 나온 권위여야 합니다.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는 것은 이미 권위가 없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권위에는 자연적으로 경배하게 됩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권위가 있는 말이 있습니다. 이 권위는 인간의 조직이나 계급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 분이 임재하시면 맑은 창공과 보좌가 옹호해줍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오직 한 가지는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주님만 계시다면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이 없지만 주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보좌의 모양이 보석 모양인데 보석 중에서 남보석 즉 투명하고 파란색이 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남보석은 종류가 다양해서 파란색만 가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가졌습니다. 짙은 파랑이나 남색을 띄는 것도 있지만 붉은 빛이나 핑크빛을 띄는 것도 있습니다. 이 보석은 순결과 청순의 의미로 사용하여왔습니다. 출애굽기 2410절에 보면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의 모습이 남보석 같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때의 하늘은 청명하였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판결흉배에 붙어있는 신성한 보석 중 하나입니다(28:18). 즉 대제사장이 보좌를 가슴에 달고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119절에 기록된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으로도 사용됩니다. 로마 가톨릭의 고위직들은 12세기 이후 남보석을 목에 걸거나 반지로 만들어 하고 다녔습니다. 이 보석을 현대의 사파이어로 보기도 합니다(K.J.V).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즉 남보석 모양의 보좌 위에 한 형상이 있는데 그 형상이 사람의 모양으로 보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네 생물 위의 궁창 위의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이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신 것이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이실 때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십니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에 사람을 가장 마지막에 정성스럽게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귀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물론은 사람이 물질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이런 사상을 가지면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전체에서 사람을 귀하게 보시는데 그 이유는 그 속에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에도 영혼이 있습니다. 생겨난 태아가 한두 달이 지나면 영혼이 들어갑니다. 온 우주의 핵심에 있는 형상이 사람의 형상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형상이 구약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의 소원은 천국이라는, 혹 단순한 생각으로 좋은 곳에 가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은 더 장엄한 뜻을 가지시고 우리를 보좌로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21절에서 이기는 자는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싸워 이긴 자만 보좌에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보좌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은 사탄의 배역 때문입니다. 사탄은 자기 마음대로 보좌를 만들었고 이 보좌를 하늘 높이 올리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땅에 내던지고 포로로서 보좌 곁으로 데려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와 마귀에게 붙들린 자는 다 같이 보좌에 갈 수 없습니다.

마귀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 보좌 앞으로 끌어내리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죄인과 이기지 못한 자는 하나님 보좌에 갈 수 없습니다. 물론 마귀와의 전쟁을 항상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기고 지는 여러 전투가 있고 이를 통해 땅을 얻고 또 잃고를 반복할 때 결론적으로는 땅을 넓혀가는 것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일생을 살며 수천, 수만 번을 싸우는데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봤을 때 남은 땅이 별로 없다면 그것은 진 것이고 마지막에 땅을 많이 얻었다면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내 몸을 영토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내 마음을 영토라고 말할 수 있으며 넓게는 내 가정, 내 직장, 내 교회 등으로 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싸워 이겨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땅이 점점 더 넓어져야 합니다. 만약 계속 밀려서 마지막에 성령이 역사하시는 영역이 내 안에 거의 남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구원을 받는다고 해도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이고 하나님이 베풀어두신 보좌에는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보좌에 간다고 하는 것은 영적으로 무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좌에 당도할 때까지 충만한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보좌로 인도되면 하나님은 사탄 앞에서 우리를 자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보좌 위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 예수님이 진정 보좌 위에 앉으실 분입니다. 일생의 여러 여정 후에 원래의 자리인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은 많은 이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2:10) 즉 보좌로 인도하시는 일에 개척자이십니다. 그 분이 선구자이고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27절에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쇠 같아서보좌에 계시는 사람의 형상을 이룬 재료가 단쇠 같다는 것입니다. 단쇠는 금과 은의 합금과 같은 것입니다. 보좌에 계신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는 금과 같고 은과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보좌 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면 허리 위쪽은 단쇠와 같고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라고 하였으므로 불덩어리인 셈입니다. 에스겔은 자신이 본 환상을 설명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보좌는 남보석 같다고 하였고 그 위에 앉으신 분은 단쇠 같으면서도 또 불덩어리로 보이니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불이 강하면 파란 빛이 나므로 남보석 같고 또 불이 환하게 타오를 때에는 희고 노란 금이나 은 같은 빛으로 보이고 또 불이 너무 강하므로 물처럼 흐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므로 다양하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여기서 허리 밑 부분은 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허리 위쪽은 보좌 위에 앉은 사람의 성품과 기질을 알려주는 것이고 허리 아래는 행동력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보좌에서는 강력한 빛이 납니다.

에스겔은 최고 수준의 선지자이므로 이런 정도의 체험할 수 있겠지요. 첫 번째 보좌자리에 갈 사람도 많지 않고 솔직히 하나님을 직접 만나서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할 가능성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이만큼 체험은 못합니다. 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체험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느냐에 따라서 수준 높은 영적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한 영적 세계는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그만큼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정확하게 보고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영적인 것을 강조한 경우도 있고 이성을 강조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성도 무시할 수 없고, 경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이 다릅니다. 기독교 안에는 다 필요한 겁니다. 지금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면서 에스겔만큼 체험하지 못하고 있고 사실 그렇게 체험하기도 어렵습니다. 에스겔과 같이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이성적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볼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을 말하거나 보는 것은 영적인 것을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므로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머리로만 알거나 가슴으로만 느끼면 옳지 않습니다. 가슴도 느끼는 영감도 정확한 해석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내가 영적이 되어야 하고 환상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내가 환상을 봐야 됩니다. 어떤 사람의 영적인 경험에 대해서 똑같이 따라갔을 때 해석이 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지 따라가지도 못하면서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것은 출발부터 옳지 않습니다. 예언서나 영적인 체험을 해석할 땐 그런 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이 그것에 대해 평가하거나 해석하면 실수합니다. 그래서 칼빈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는 것은 양심적인 것입니다.

 

28절에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주님에게서는 사방으로 광채가 났습니다. 네 생물에게서도 광채가 났습니다. 그런데 광채의 모양이 무지개로 나타났는데 무지개는 비가 그친 후 빛이 비출 때 생기는 것으로 물과 빛이 있어야 합니다. 보좌에는 물이 있어서 천국과 이 땅까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보좌 다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무지개가 생기는 것입니다. 광채라는 것 중에 무지개로 보입니다. 빛을 정확히 보면 무지개 색입니다. 하나님의 색과 은사의 색깔도 무지개색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은 각각의 색이 있어서 하나님이 다양한 은사를 골고루 주신 사람은 그의 은사가 무지개 색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탄도 색이 있는데 다 합해 놓으면 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밝은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도 여러 은사로 인해 무지개 색을 띄지만 결국 흰 세마포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빛의 색을 다 합하면 흰 색이 되지만 물감의 색을 다 섞으면 검은 색이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하나님 자신이 무지개라는 것입니다. 무지개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무지개를 보여주시므로 내가 나타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노아 때에도 하나님께서 무지개로 나타나셨는데 무지개는 약속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광채이면서 임재입니다.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이후 더 이상 이 땅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가진 것은 그분 앞에서 심판으로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그 앞에서 겸손히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도 조용히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마리아도 겸손히 그 발 앞에서 들었습니다. 네 생물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날개를 접은 것과 같습니다. 에스겔도 역시 겸손히 그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는 내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은 날마다 겸손히 그분 앞에서 겸손해집니다.

진정한 성도는 자신의 생각 내려놓아야 하는데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 부모의 말이나 목사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결정한 것이 옳으면 좋지만 대부분 그런 생각이 옳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안 하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았는데 그는 내가 세워놓은 인생 계획이 있는데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실까봐 두려워서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 안에도 많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에스겔은 수준 높은 선지자로서 다 내려놓고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위대합니다. 에스겔이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을 만난 것을 보면서 우리도 에스겔만큼은 못 되어도 상당한 영적 수준이 되어서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