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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들으려면 차별화하라(룻 1:1-10)-2019.4.7

201947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칭찬 들으려면 차별화하라

본문 : 룻기 11-10

말씀 : 이희만 목사

 

 

신약성경을 읽다 보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리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기도해도 받으신다는 우리 주님이 참으로 좋습니다. 한번은 구약을 읽다가 다른 관점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기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 2032절에 보면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도 이웃나라같이 되게 하여 주세요.”라는 기도는 결코(never happened)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고생하기 싫습니다.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리밥 먹으며 나도 보리밥 먹고, 다른 사람이 전셋집 살면 나도 전셋집 살고 다른 사람이 걸어 다니면 나도 걸어 다니겠습니다.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마시고 보통사람처럼만 저를 대우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드리면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받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르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화되어서 그 동네 사람처럼 살면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두 글자로 거룩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산다는 말이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 때 하나님께서 칭찬해주시고 축복의 길을 열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룻기에서 그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1. 시대 정황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절 같이 보겠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삶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거류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사사들이 치러하던 때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어떤 때일까요? 그 해답은 바로 위에 기록한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일 사사기 2125절에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리더십을 말합니다. 공동체의 안정을 책임질 사람, 밖으로는 적군에게 보호하여, 안으로는 건강하고 풍성하고 안녕한 삶을 살도록 하련 그런 안목이 있어서 그렇게 백성들을 지도하고 선도하고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제도적으로는 왕이지만 리더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한 양 같아서 성격은 좋지만 외부의 적에 대처할 만큼 모질지 못합니다. 또 스스로 앞가림 못하는 양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리더십인 목자의 인도함에 따라 생활하는데, 목자 같은 목자가 없어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자기 소견대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신명기 1718-19절에 보면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읽어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있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항상 성경책을 옆에 두고 읽어서 성경책을 법으로 알고 법처럼 지키고 백성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면 백성들이 그 왕의 말씀을 성경말씀으로 알고 순종하게 되어 그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차별화된 백성으로 규정했습니다. 창세기 122-3절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나갔습니다. 손자 때에 르우벤, 시몬, 레위, 유다, , 납달리, ,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을 낳았고, 이를 통하여 12지파를 형성하여 민족의 초석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약속을 모리아 산에서 정점을 찍음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세우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이 약속의 말씀을 글자로 적어서 후손 대대로 누릴 수 있도록 계시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약속하십니다. 출애굽기 195-6절에 보면 세계가 내가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특별한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면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시내산의 말씀은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주셨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을 그냥 말씀이 아니라, 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세오경을 율법이라고 하고 율법서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22-3절은 약속입니다. 우리에게, 세계 민족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약속입니다. 이것을 글로 명시하고 계약서를 썼습니다. 이것이 계약이라 했습니다. 나중에는 계약을 뛰어 넘어서서 법이라고 하여 율법이라고 불렀습니다. 법은 꼭 지켜야할 사항을 규정합니다. 그래서 법을 안 지키면 벌이 옵니다. 예레미야는 그 율법인 하나님의 말씀을 안 지키면 가난, 질병, 전쟁, 포로가 온다고 례레미야 2918절에서 말하였고, 에스겔은 에스겔 512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은 이런 말씀을 백성들에게 들려 줄 사람이 없었던 때가 사사시대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력이 있어서 혼과 영을 살찌게 합니다. 신앙이 성숙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적 기갈이 생겨서 마음의 가난해지고 나중에는 정신이 피폐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순서대로 흉년이 왔고, 말씀을 떠나서 모압 지경에 이르는 가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여기에 있는 한 가정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시대 상황을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들어가서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의 부인 나오미는 즐거움, 안락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DNA는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항상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가정은 항상 즐거움과 안락함을 지탱할 수 있고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복 받은 가정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 나갈 때 지속가능한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이름만 있고 열매는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4글자로 말하면 유명무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로 인생에 빨간불이 켜질 때 정신 바짝 차리고 주님께로 가까이 나와서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해야 합니다. 모리아 산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시내산의 기록된 말씀을 마음속에 확실하게 새기고, 갈보리 산의 주님의 십자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진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 가고 있으면 궤도를 수정하여 확신 있게 살아야 합니다.

흉년은 큰 사인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주님에게 더 가까이 가서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겠다는 결심을 주님에게 드려야 하는데, 오히려 엘리멜렉은 도망갔습니다. 도망가다가 모압 지방에 갔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절대 가지 말라고 한 곳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다가 아들들도 죽고, 아내는 즐거운 축복을 받는 나오미가 아니라 괴로운 인생길인 마라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죽었습니다. 남은 가족에게 가난만 물려주고 죽은 것입니다.

이런 고난은 보통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일입니다. 언약 백성은 어떤 정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갈보리 산인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힘들다고 경제 문제가 생겼다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피해서 쉽게 살려고 하다가 본인도 죽고, 자식도 죽고 가문이 망하게 하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인에게는 수치일 것입니다.

 

2. 기억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차별화될 가능성 있는 한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를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한사람이 나오면 우리의 모든 상황을 축복의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사 시대는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엘리멜렉이란 이름이 여호와는 나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럴 듯하나, 실제로 그는 현장에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난이 왔을 때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하여 멀리 도망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책을 읽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 사람들, 레위인, 나실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니 믿음이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레위인이 아니더라도, 나실인이 아니더라고 그저 하나님의 눈에 믿음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사용하시던 시대가 사사시대였습니다. 예를 들면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쇠태우리라는 말입니다. 드보라는 여자였습니다. 기드온은 농사지을 때 숨어서 타작하는 겁쟁이였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적군은 쳐들어오고 백성들은 삶이 고달파서 부르짖는데,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원역사에 뛰어 들 사람이 없습니다. 이름은 그럴듯하게 엘리멜렉, “여호와는 나의 왕”, 나오미, “안락, 행복, 즐거움의 복을 갖고 태어났습니다만 그들이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응답을 하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사람을 들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와서도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성경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6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리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는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다릅니다. 사람들은 스펙 있고, 인물 좋고, 키가 남자는 180cm, 여자는 170cm이고, 어학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얼굴 예쁘고 가문 좋은 사람을 좋아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전혀 예상외의 사람을 들어서 랜드마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룻기 116절에 보면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의 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이 확실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애굽의 모든 장자를 다 죽일 때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셨습니다. 애굽의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러 올 때 그들을 모두 홍해에 빠뜨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게, 발이 부르트지 않게 인도하셨습니다.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공격해 올 때는 벌떼를 보내어 삽시간에 다 흩으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이 성경을 주시면서 이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너희를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고 나의 특별한 소유, 다시 말하면 차별화된 축복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확실한 고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우리 주님은 찾으십니다.

이렇게 차별화된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 있습니다. 바로 룻입니다. 룻은 세상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유대인이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종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룻은 이 3가지에 다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소중한 신앙 고백이 있습니다. 룻이 나로 세상에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얼마나 강조했던지 18절에 보니 나오미가 룻이 자신과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마음에 결심하는 바를 아십니다. 어누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신앙심과 열정이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을 랜드마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모두가 제 갈 길로 갑니다. 오르바는 보통사람처럼 자기 인생길을 찾아 갔습니다. 일반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룻은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하나님의 신앙, 아브라함이 붙잡은 신앙, 모세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앙을 붙잡고 죽을 각오하고 확고하게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5가지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첫째 때를 따라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1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7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입니다. 의미를 따지면 유월절은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 받은 날입니다. 무교절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 받은 날입니다. 초실절은 믿음의 첫 열매를 맺은 날입니다. 네 번째 오순절은 성경을 받은 날입니다. 나팔절은 삶의 현장에서 나팔소리를 들으면서 축복을 누리는 절기입니다. 여섯번째는 속죄일, 주님을 만나 정결함을 얻는 절기입니다. 마지막 일곱째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장막에 들어가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면서 축복을 누리는 절기입니다. 여기에서 보리 추수하기 시작할 때는 유월절로서 죽고 사는 문제 해결할 날로 50일째 되는 날 십계명을 받았는데, 유대인들은 성경을 하나님께 받은 날로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과 연애하는 날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임하여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던 주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50일째 부활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하였고, 성령의 임재로 축제가 벌어진 날이 되겠습니다.

이 놀라운 비밀이 룻에게서 이루어진 징조가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리밭에 가게 하셨습니다. 그때 발걸음은 믿음의 랜드마크인 보아스를 만나게 하였고, 보리밭의 로맨스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둘째 그 동네 여자와 시어머니에게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룻기 4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 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일곱 아들보다 더 귀하다고 동네 사람들이 칭찬하고 있습니다.

 

셋째 자녀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417그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은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벳은 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종의 대열로서 족보에 들어갔고, 거기에 더하여 다윗을 나음으로 메시야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중요한 랜드마크를 만든 것입니다.

 

넷째 친정집이 덕분에 잘 되었습니다. 이것은 추측입니다만, 다윗이 나중에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훈련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고생길에 함께 다니게 할 수 없어서 좋은 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때 어디에 모셨을까요? 바로 모압 왕에게 보내어 안전한 곳에 모시게 했습니다. 바로 그 나라가 룻의 나라인데요. 다윗의 할머니 룻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아집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5-6절에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에서 룻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까.

 

우리교회도 2019칭찬 듣는 교회가 되자라는 깃발을 들고 출발하고 있습니다. 룻이 차별화된 신앙으로 칭찬 받았듯이 우리도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