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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물(겔 1:4-8)-2019.3.3

201933일 주일오후예배

제목 : 네 생물

본문 : 에스겔 14-8

말씀 : 한양훈 목사

 

 

에스겔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천상에 있는 영적 존재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엄청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과 비슷한 수준으로 영적인 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 소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에서 보면 모세 같은 경우 에스겔과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도 물론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설계도를 보여주셨는데 그것을 보고 지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창세에 되어진 일을 썼으므로 최고의 수준입니다. 그 외에 다니엘이 영적인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을 만났지만 천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이 많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바울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 사람은 모세, 에스겔, 다니엘, 요한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천상에 대해서 말한 것을 보면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수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이므로 24장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많은 영적 은사를 많이 내려주시지만 이렇게 깊이 영적인 세계를 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은사를 주시는데 계열이 있습니다. 다윗 계열, 모세 계열, 아담 계열 등이 있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에스겔 계열의 은혜를 받으면 하늘을 잘 봅니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하늘에 가서 에스겔이 다스리는 동네에서 살게 될 것으로 봅니다. 닮은 삶을 살다가 천국에서도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구약시대의 손꼽히는 인물인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하늘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천사도 보지 못하는데 누구는 천사 중에서도 네 생물의 생김새를 자세히 묘사할 정도로 깊이 보았다는 것입니다. 직접 보지 못하였으니 성경에 쓰여진 것이라도 잘 알아야 하므로 에스겔이 본 환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에 내가 보니즉 에스겔이 보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모습을 본 이후 또 다른 광경을 보게 됩니다.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라고 했는데 여기서 북쪽은 하나님이 계신 방향이고(48:2) 하나님이 오시는 모습이 폭풍처럼 강하게 오시는 것이며 거대한 구름이 몰려오는 광경으로 보여진 것입니다.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폭풍과 구름이 몰려오는데 그 안에서 불이 번쩍번쩍 빛나며 구름 밖으로 그리고 멀리까지 그 사방에빛이 퍼져나갑니다. 어디에서든지 그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광경입니다.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라고 표현했는데 단 쇠는 쇳덩어리인데 이는 금과 은의 혼합물로 된 철물의 눈 같고”(박윤선)처럼 번쩍번쩍하는 주석쇠를 가리킵니다. 단 쇠는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이시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네 생물의 형상은 요한계시록에도 나와 있습니다. 네 생물에 대한 설명은 학자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네 생물 자체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네 생물이 그리스도는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 어쨌든 주석들을 보면 여러 의견이 있으나 네 생물은 단순하게 네 생물로 봐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빛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구성 자체가 빛이시고 우리 인간의 영혼도 실상 빛으로 되어 있습니다. 빛이 우리가 생각하는 빛이 아니라 태양과도 같아서 빛이 밝기도 밝지만 그 안에는 뜨거움이 있고 에너지가 있습니다. 태양이 비쳤을 때 돋보기를 대면 타잖아요. 거기에 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태양빛은 뜨거움이 있고 열이 있고 에너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할 때 우리가 가장 설명하기 좋은 것이 바로 태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인간이 알 수 있는 수준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태양으로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체는 워낙 크고 강하고 위대하므로 우리가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네 생물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여기서 나타난 구름 덩어리나 빛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구름과 빛 덩어리 4개가 하늘 보좌 옆에 떠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절에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와 성자의 모습을 보는 중에 더불어 네 생물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네 생물은 사방을 말하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편재하신 것을 말합니다. 네 생물은 다니엘 73-7, 요한계시록 46절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즉 네 생물은 천사들인데(박윤선) 그 중에 하나의 모습이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같은 지혜와 인격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가르치기 위해 있습니다. 또한 이 네 생물은 하나님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1015절은 이 생물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천사의 한 종류라고 밝힙니다.

 

6절에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네 생물에게는 각기 얼굴이 있으며 한 생물에게는 네 개의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네 생물에게는 네 개의 날개가 있는데 두 개의 날개는 몸을 덮어서 가리고 나머지 두 개의 날개로 움직입니다. 두 개의 날개로 가리는 것은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두 개의 날개로 움직인다는 것은 날아간다는 의미이지요. 네 생물이 하는 일이 바로 이 날개의 하는 일처럼 보호하고 움직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보호와 움직임에서 나타나며 보호하시면서 힘차게 활동하십니다. 이 날개는 빠르게 움직입니다(14).

 

7절에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에스겔이 네 생물에게서 다리를 보았는데 그 다리가 곧게 뻗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즉 송아지의 발처럼 평평하고 강하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라고 네 생물을 표현했는데 아까 나온 단 쇠 같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형질의 모습으로 본 것입니다.

송아지 발바닥 같고라고 나옵니다. 송아지의 모습인데 송아지의 발굽과 발바닥을 가졌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다고 그랬는데 발바닥을 보면 광낸 구리같이 빛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광낸 구리 같다는 말은 결국 다리가 쇳덩어리 같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뱀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구리뱀이라고 하는 것은 실상 모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쇳덩어리, 즉 구리를 보고 살았다는 것은 구약시대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살았다고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여기 나타난 광낸 구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송아지의 발굽이나 발바닥은 날카롭지 않습니다. 날카롭지 않은 것은 사납지 않다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렇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원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사납지 아니하고 송아지의 발처럼 순종적이고 든든하게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2절에서 육체의 지혜로 행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은 육체의 지혜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 송아지의 발을 보고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볼 때는 지혜가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생명을 모두 건지셨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단순하게 행했는데 단순이라는 것은 진실함과 거룩함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난잡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니 거룩하고 진실하지요. 하나님의 사람이 단순하게 일을 하게 되는 데 이것이 거룩함과 진실입니다.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송아지의 특징을 말하고 있는데 송아지 다리는 곧습니다. 주님은 곧으신 분으로서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좌절하는 법이 없습니다(박윤선). 우리 인간이 백 마디 말을 하면 인간은 죄인이므로 백 마디 다 진실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목표를 정할 때 내가 백 마디 말을 하면 최소한도 아흔 여덟 마디, 아니 아흔 아홉 마디는 진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백 마디 하는데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라면 이것은 주님을 따라간다고 볼 수 없지요.

저는 제 말의 진실함이 98,99%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표로 삽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할 때 거짓지수 측정한다면 거짓지수가 5%정도로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95%정도가 깨끗한 거니가 서로서로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말을 하다보면 약간은 더하고 빼질 수 있으므로 100%가 되기는 힘듭니다. 하얀 거짓말이나 선한 거짓말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거짓말은 생명을 건질 때 외에는 없습니다.

마귀는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선한 거짓말도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기독교윤리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것 외에는 허락되어진 적이 없습니다.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의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입니다.

또한 송아지의 발바닥은 갈라져있습니다. 이것은 분별력을 가리킵니다. 레위기 114절에서 6절까지 보면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부정하다고 말했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요.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짐승인데 발굽이 안 갈라졌다고 부정하고 발굽이 갈라졌다고 부정하지 않다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냐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주석을 보던지 갈라진 것은 분별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발굽은 아까도 말했지만 광낸 구리처럼 빛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송아지는 힘이 있고 잘 뜁니다. 그래서 시편 296절에 보면 송아지처럼 뛴다고 나옵니다. 이것은 살아있다는 말이고 힘이 넘치고 생명이 넘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네 생물의 이런 모습은 우리 주님을 가리키고 우리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곧고 생명이 넘쳐서 송아지처럼 뛰고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주님이 뛰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네 생물을 에스겔이 보았는데 오백년 후에 요한도 똑같이 보았습니다. 오백년이 지나도 네 생물의 모습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습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이후로 500년 후에 본건데 요한 이후에 2000년 교회사 가운데 천국을 본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진화하거나 변하거나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8절에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네 생물 하나하나 마다의 공통점은 사람 손 같은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각 얼굴도 있고 날개도 있고 발도 있고 손도 있는 것입니다. 네 생물이 공중에 떠있는데 사람 손이 쑥 나와 있는 것입니다. 얼굴은 독수리인데 사람 손이 나와 있으니 에스겔이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 정말 신비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체험할 수 없는 부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손이 나와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할 것 없이 네 생물이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일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일하고 하나님도 일하고 천사도 일하고 다 일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올라가서도 우리는 또 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는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할 거라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은 영안이 안 열린 사람입니다. 하늘나라 올라가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한 사람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배도 매일 드리고 각자 맡은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늘나라에서도 해야 합니다. 일하기 싫어서 죽어버린다는 사람은 하늘나라 가서 일을 더 많이 합니다.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각자에게 하나님이 맡기실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나라는 일하는 곳이니 일하지 않는 자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일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일을 싫어해서 부잣집에 시집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고대에 친정집에 가면 친정어머니가 시집간 딸의 손을 본다고 합니다. 부잣집에 시집가면 일부러 일을 안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손톱을 길러서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친정 부모님이 보고 우리 딸 고생 안하는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손톱이 길면 일을 안 한다는 뜻이고 이것이 부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손톱 깎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 닳아버리니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일하는 나라이고 하나님도 전 인류를 감찰하시며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계속 선지자를 불러서 어디에 가서 이런 말씀을 외쳐라.” 하고 지시하시고 천사들에게도 생명책 적으라, 인간들 어떻게 하는지 보고해라.” 하며 간섭하시고 기록하시고 계획하시는 등의 다양한 일을 하십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하나의 일꾼인데 그 일꾼이 손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특히 영성가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함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또 기도하고 성도들을 돌아보며 열심히 움직이라는 것이지요.

바울도 사도행전 2024절에 보면 자기 손으로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동역자의 필요를 공급하였고, 고린도전서 1510절에 보면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수고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하늘나라에서 아주 크신 분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그분은 열심히 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편안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삶은 하나님의 일꾼의 덕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지만 개인적인 수고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볼 때 놀고먹는 것은 불행한 사람이고 또 거지도 얻어먹으니까 불행한 사람입니다. 유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부모가 재산을 많이 물려주어서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며 일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대개 부모가 많은 것을 물려주길 꿈꾸고 편안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일을 하면 열매가 꼭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면 열매가 있고 내가 씨를 뿌려도 열매가 있고 어떤 일이든지 일을 하면 거기에는 열매가 수확되기 마련입니다.

봉사하는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입니다. 일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누구 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줄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니까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알려주셨고 기독교에서 그렇게 가르치지만 세상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 기업이 한 선한 일들을 광고하고 자신이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단체가 있는데 우리 단체는 오른손이 한 것은 왼손이 모르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그 단체에 후원해주지 않습니다. 어떤 업적이 있는지, 어떤 선행을 했는지 자꾸 이야기를 해야 사람들이 그 기업은 정말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후원도 하고 인정도 해줍니다. 현대사회는 실적을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광고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수고했는지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알아도 좋고 몰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일한 것은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다 쌓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 땅에서 누가 알아주는 것을 바라는 것은 영적으로 아직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자꾸 말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취업을 할 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꼭 내지요. 이 자기소개서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있지만 왠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 같아 익숙하지 않을 때가 있어요.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될 수 있으면 감추고 하나님만 아시면 되는데 세상이 자꾸 요구하니까 세상에 살아가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대개 교인들이 사회를 위해서나, 어떤 봉사나 선행을 할 때 말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도움을 받는 사람만 암암리에 비공식적으로 알고 감격하고 그러면 되는데 말을 해야 사람들이 인정해주니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생각해보니 세상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저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 관심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사람이 많으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볼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자기 PR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지요. 거기다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많으니 믿을 만한 근거가 필요하니까 자기소개서 같은 서류나 문서, 기록물 등의 증거자료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회가 영적으로 흐르지 못하게 막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일하는 손이 아름다운 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만족을 주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종류든지 귀한 것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러니 목사님들이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도 우리 영혼을 건지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끊임없이 네 생물이 움직이며 성령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이므로 너무나 귀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한 영혼을 위해 일하는 것은 천하를 위해 일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내가 열 명의 영혼을 위해 일해서 열 명의 영혼을 구원하였다 하면 천하를 열 번 구한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목사님들에게 당신에게 열 명의 영혼을 맡기고 그 열 명의 영혼을 천국 보내는 것이 좋습니까, 당신에게 10억을 주는 것이 좋습니까하고 물으면 대부분은 10억을 달라고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정말 귀합니다. 그래서 영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귀합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가진 것 별로 없어 보이지만 영혼을 위해 일한 자가 정말 부자입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시는 목적이 사람 영혼 하나 건져보려고 일하시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 일에 동참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목사님들이나 사모님들은 이를 정말 굉장한 축복과 영광으로 아셔야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직업은 목사입니다. 이 세상 모든 직업을 합해도 목사보다 좋지 않아요.

저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서 우리 6남매가 모두 목회자라는 것이 감사합니다. 어릴 때에는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별로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돈 많이 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잘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친구들이 공부 많이 하고 좋은 직장 들어갈 때 저희 부모님은 저희에게 그런 거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부모님에게 예수 똑바로 믿어라, 기도 열심히 해라, 그 말만 듣고 자란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친구들이 집을 사고 직장에서 연봉이 얼마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잘못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세상 친구들은 이만큼 이뤘는데 나는 예수만 잘 믿고 신학교 나와 목회하고 있으니 뭔가 그들보다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서는 이게 옳은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 자녀들이 다 목사가 되고 사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겠고 제 손자들도 주의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